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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정보

김대건 신부 영화 일대기 총정리

by 이 세상의 모든 정보들 2022.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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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는 본관은 김해, 어릴 때 이름은 재복, 보명은 지식, 세례명은 안드레아입니다. 대건은 관명입니다. 그는 충청남도 내포의 솔뫼(지금의 당진)에서 태어났습니다. 최근 김대건 관련 영화가 개봉 예정인데 김대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김대건 신부 출생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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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부 진후는 교인이었던 아들의 권유로 50세에 입교하여 1791년 박해 이후 여러 차례 체포되어 고문과 유배를 당하다가 1814년 충남 해미 교도소에서 순교했습니다.

이에 따라 할아버지 택현은 경기도 안성으로 이사를 갔고 김대건은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제준은 다시 내포로 이주하여 신앙생활을 했고 1839년 김해 박해 때 한양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습니다.

김대건 신부 신학교 시절

순교자 집안에서 자란 김대건은 피에르 P 신부에 의해 최양업과 최방제의 뒤를 이어 선정되었습니다. 모반트는 1831년 파리 외전 교회의 정책에 따라 한국 사제 양성에 적합한 남자아이를 구했습니다.

라틴어와 함께 사제로서의 기본적인 기술을 가르친 후 모방 사제는 한양을 떠나 귀국한 유제 신부의 편으로 12월 2일 그들을 마카오로 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모방 신부는 마지막에 뽑힌 자신의 마음을 잘 몰라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김대건은 앞으로 조선 성곽교회에 몸을 바치겠다고 말해 함께 보냈습니다.

만주, 내몽골, 중국을 거쳐 8개월 만에 마카오에 도착한 그들은 파리 외전 교회 동양 회계과에서 정식 교육을 받았습니다. 중등 과정을 마친 후 그는 철학과 신학 과정을 마쳤고 그중 최방제는 1838년에 사망했습니다.

1841년 9월 김대건은 아편전쟁을 틈타 중국과 조선에 파견된 프랑스 군함 2척 중 1척과 동행하여 1842년 양쯔강에 이르렀으나 이 군함이 중국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만주로 돌아오자 이 군함은 중국인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1842년 12월 압록강을 건너 평안도로 들어갔으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이듬해 1월 만주로 돌아왔습니다.

김대건 신부 한국인 최초의 신부 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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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년 조선교구 제3교구인 페레오 주교의 명을 받아 외국인 신부들이 조선에 들어올 수 있도록 두만강 너머 조선에 잠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억압과 건강 악화의 분위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의 정착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1845년 4월 배를 타고 중국 상하이로 이주했습니다.

이곳에서 김대건은 8월 17일 페레올 주교로부터 새로운 성찬식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첫 번째 한국인 신부의 탄생이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김대건 신부 순교

10월 그는 배를 타고 페레올 주교와 함께 조선으로 향했고 많은 고난 끝에 강경 황산포 근처의 나바위에 상륙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페레올 주교와 함께 한양에 잠입하여 활발한 학교 활동을 펼쳤습니다.

1846년 아직 만주에 머물고 있는 메스트르 신부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해 서해안 도로를 개척했고 6월 랭크 섬에서 체포됐습니다.

옹진군 형무소를 거쳐 해주 형무소에서 황해 감찰관의 심문을 받고 조선에서 태어나 마카오에서 자란 뒤 귀국해 천주교를 전파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후 한양으로 압송돼 국가의 금지령을 어기고 출국한 사실과 천주교 신부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장관들의 요청으로 세계지리를 개괄한 책을 만들고 영국에서 만든 세계지도를 번역하고 두 개의 지도를 색칠하고 헌정했습니다.

당시 조선 정부는 김대건 등의 옥사를 중시하지 않았는데 권력을 누리면서 천주교 박해를 주도하던 풍양 조의 권력이 끝나는 등 큰 권력 변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846년 기해박해 때 프랑스인 신부 3명이 처형된 것에 항의하기 위해 프랑스 함대가 충청도 홍주 앞바다에 출동해 조선시대 정대감에게 문책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에 놀란 조선 정부는 그를 처형하기로 결정했고 김대건은 같은 해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했습니다. 그의 시신은 교인들에 의해 수습되어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산속에 안치되었습니다.

김대건 신부 평가

김대건은 조선 최초의 천주교 신부였을 뿐만 아니라 열성적인 학교 활동과 경건하고 자신감 있는 종교 태도로 인해 많은 교회와 수도원의 주요 보배가 되었습니다.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103명의 성인 중 하나로 선포되었습니다. 한편 2019년 제40회 유네스코 총회에서 김대건이 세계 기념물로 선정된 것은 2021년으로 김대건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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